'26년 北 취재' 이시마루 지로 "대북제재로 평양 돈주 무너져"

입력 2019-05-14 13:51   수정 2019-05-16 06:54

북한을 가까이서 겪은 사람들
(2)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북한취재팀장

대북제재, 지난해부터 북한 경제 본격 강타
김정은 비자금 관리 ‘39호실’도 흔들



올해의 한반도 정세는 지난해의 ‘평화 모드’와는 사뭇 다릅니다. 지난 2월말엔 베트남 하노이에서 미국과 북한이 2차 정상회담을 열었다가 결렬됐습니다. 지난 4월 25일엔 북한이 김정은 체제 출범 후 처음으로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은 초라하고도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지난 5월 4일과 5월 9일,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은 한반도를 둘러 싸고 새로운 판 짜기가 시작된 지금, ‘지구에서 가장 폐쇄적 세계’으로 손꼽히는 북한을 직접 가까이에서 경험했거나 바라본 인사들을 만나 릴레이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인터뷰이는 26년 동안 북한과 북·중 접경 지역을 취재, 북한 내부에 취재망을 가지고 있는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북한취재팀장입니다.

“대북제재로 평양의 ‘돈주’들이 무너지고 있어요. 농민들에 대한 수탈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개혁과 개방을 너무도 갈망하지만 입 밖으로 말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 북한이 밀고 있는 ‘자력갱생’ 구호와 정반대니까요. 자력갱생은 ‘폐쇄와 독선’이니까요.”

26년 동안 북한을 취재해 온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북한취재팀장(56)은 북한이 최근 경제난과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4일과 9일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배경엔 향후 미·북 회담에서 핵과 미사일을 얼마나 ‘비싼 값’에 거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며 “제2의 ‘고난의 행군’이 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북한 내부에 퍼져 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는 지난 4월 23일 대면 인터뷰, 이후 수시 연락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시마루 팀장의 한국어는 매우 유창했다.

▶북한이 재작년에 이어 또 다시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일단 내부적 요인이 세 가지 있다고 봅니다. 기동성 높은 고체연료식 단거리 미사일을 확보하려는 군사적 동기가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로 ‘우리들은 제재를 견딜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아울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 내부에 ‘우리가 비핵화로 간다 해도 군사강국 노선은 지속한다’고 강조했을 겁니다. 김정은 정권의 권위 유지가 중요하니까요.”

▶그렇다면 대외적 이유는 무엇입니까.

“김정은은 중국, 한국,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하면서 ‘결국 미국의 양해가 필수’란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를 계속하는 데 찬성하고 있어요. 그들에게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위협이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은 협상과 거래를 통해 경제난을 뚫어보려 한다고 봅니다. ‘하노이 회담’ 결렬 때 미국이 낸 비핵화 조건의 허들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 미국으로부터 받는 대가를 얼마나 최대화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을 겁니다.”

▶북한 내부 기자들이 전해 오는 현장 소식은 어떻습니까.

“아주 상황이 안 좋아요. 특히 농촌 지역은 아사자(餓死者) 발생 위기까지 몰려 있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 부탁드립니다.

“북한 당국의 농민 수탈이 너무 심해요. 농민들이 해마다 당국에 바쳐야 할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군량미입니다. 이건 수확 결과와 상관 없이 무조건 정해진 양을 채워야 해요. 두 번째는 군량미를 제외한 할당 계획량입니다. 북한이 2014년부터 포전담당제를 실시하고 있죠. 이게 말로는 계획량을 초과한 나머지는 개인이 갖고 갈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그런데 이게 현실은 농장원에게 이익이 되지 않았습니다. 계획량 설정치가 너무 높은 데다, 작년의 고온 등 기후 악화로 흉작이 되면서 개인이 갖고 갈 게 없죠. 이 때문에 작년 가을 수확 후에 분배된 식량을 다 먹은 ‘절량세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생산자인 농민이 굶주리고 있는 겁니다. 정권에 의한 수탈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시 지역은 어떻습니까.

“사실 대북제재 영향은 평양의 부유층들이 제일 많이 받았습니다. 부유층들이 위태로워지니 김정은의 비자금을 담당하는 ‘39호실’ 사정도 어려워졌죠.”

▶왜 그렇게 됐습니까.

“북한의 수익 흐름은 주민의 노동력을 값싸게 이용해 생산하는 것과 해외 노동자 인력을 수출해 번 돈을 평양의 권력층, 부유층에게 분배하는 구조입니다. 강력한 경제제재로 그 시스템이 깨지고 말았죠. 이 때문에 평양의 부유층에 타격이 큽니다.”

▶대북제재의 충격이 정말 강력하군요.

“네, 특히 수출을 막은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서 석탄, 철광석, 위탁가공, 수산업 등 북한에서 돈이 될 만한 산업부문의 수출을 다 막았거든요. 특히 광산의 경우 사정이 정말 힘들어졌어요. 북한 무산광산에 우리 취재원이 살고 있어요. 함경북도에 있는 북한 최대 철광산이죠. 이 곳에 있는 연합기업소 가동률이 현재 10~20%밖에 안 되요. 그래도 직원들은 출근해야 해요. 북한은 직장 자체가 주민통제 장소라 경찰이 일일이 출근 여부를 조사하거든요. 그런데 배고파서, 병이 들어 출근 못하는 사람들이 요새 전체 직원 중 30~40%라고 합니다. 경찰도 이 사정을 아니까 출근하라고 강요할 수 없는 실정이고요.”

▶저 정도로 대북제재 여파가 심각한데도 왜 북한은 핵을 못 놓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북한은 핵개발을 생존전략으로 삼아 왔습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 핵,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한 것은 젊고, 업적 없는 김정은에게 꼭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핵도 미사일도 놀라운 속도로 기술을 발전시켜 그것을 세계에 과시했지만, 그 대가도 컸습니다. 중국, 러시아도 포함된 군사적, 경제적인 강렬한 압박을 받아 결국 바로 그 핵 때문에 망할지도 모른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2017년 말에 핵 포기 자체를 카드로 하는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전환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둬야 할 것은 북한 체제란 철두철미하게 김씨 일족의 지배를 영속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헌법도 노동당 규약도 초월하는 최고 강령인 ‘당의 유일적 영도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에 명기되어 있습니다. 북한 정부도 노동당도 김씨 일가의 안전을 위한 지배도구에 불과합니다. 즉 김씨 일족의 지배 영속을 위해서는 핵 보유도 하고, 거꾸로 핵 포기에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경제제재가 계속 되면 지배 시스템에 동요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김정은으로서도 미국과의 거래는 불가피합니다.”

▶그렇다면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북한 주민들 반응은 어땠습니까.

“정말 실망이 컸어요. 그 회담이 성공하면 막혔던 수출길과 대북제재가 풀릴 것이라고 다들 기대했거든요. ‘하노이 회담’을 기점으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핵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게 됐어요. 회담 결렬 전만 해도 ‘핵이 있으니 미제가 침략을 못한다’, ‘핵이 무서워 미국이 대화에 나왔다’는 당국의 선전을 어느 정도 믿었지만 회담이 깨지고 나선 ‘핵을 포기해도 되지 않을까’, ‘핵을 가지고 있으니까 제재를 받아 힘들어진다’는 의견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미국이나 중국 등 관련 국가들의 대북정책은 어떨 것으로 보십니까.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의 대북제재 기조를 장기적으로 끌고 갈 겁니다. 북한의 대답이 확실하지 않으면 만나지 않으리라 봅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핵 보유를 반대합니다. 특히 중국으로선 베이징까지 1000㎞밖에 떨어지지 않아 풍계리의 핵 실험 때 ‘우리 영토가 지진으로 흔들렸다’, ‘방사능 오염 사고도 무섭다’ 이런 불만이 많았습니다. 중국은 자국의 안전보장을 위해 북한의 핵 보유는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는 세계 공동의 패널티입니다. 이 틀을 유지, 실행하는 것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러시아는 그리 큰 역할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란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물리적으로 완전한 비핵화는 불가능할 겁니다. 북한은 핵물질을 얼마든지 은닉할 수 있고, 획득한 기술을 소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인 비핵화는 미국과 중국이 둘 다 ‘OK’하는 선에서 결정될 겁니다. 양측의 합의는 내용에 따라 한국과 일본이 불만을 가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사실상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중국의 협상에 개입하기 어렵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보십니까.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면서 절대 비핵화하지 않겠다고 단언해 왔던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개 논의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국제사회의 압박에 문정권의 대화 추진이 플러스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평양 방문 이후엔 성과 같은 것이 없습니다. ‘남쪽이 한 걸음 움직이면, 북쪽도 한 걸음 움직인다’고 하는 ‘상호 행동’을 초기에 강하게 요구했어야 했습니다. 한 해 동안 평화나 민족이라는 이념만으로는 현실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북한이라는 특이한 ‘일족(一族) 독재체제’에 대해서는 ‘관리하고 연착륙시킬 대상’이라는 발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최근 북·일 회담을 계속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7월 참의원 선거 전에 지지율을 올려야 하니까요. 아베 정권의 외교는 대미, 대러를 보더라도 매우 임기응변적입니다. 확실한 전략이 없어요. 대북 외교도 마찬가지여서 말은 훌륭하지만, 현안이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김정은과 전제조건 없이 만난다’고 하는 것도 선거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일본 납치자 문제와 관련해 김정은과 회담한다면 틀림없이 지지율이 상승합니다. 실현 가능성이 미지수긴 하지만, 아베 총리는 물밑에서 회담 성사를 위해 북한에 식량 지원을 제시하고 있을 겁니다. 김정은으로서는 손익 계산을 하고 있겠죠. 만약에 회담이 결정된다면, 제 생각에 아베 총리는 평양에 갈 것 같습니다.”

▶30년 가까이 북한을 취재하셨습니다. 취재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북한에 세 번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그 때 얻은 교훈은 ‘북한은 입국 취재 해도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보통 다른 나라들은 아무리 독재정치가 엄혹하다 해도 어떻게든 실상이 드러나게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북한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은 절대로 안 보여줘요. 체제 전체가 그러한 시스템으로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곳은 처음 봤습니다. 그 때문에 북·중 국경에 계속 다니면서 북한 내부 사람들을 기자 또는 취재원으로 같이 취재하는 방법으로 바꿨습니다. 평양 거리의 영상만 보고 그것이 북한의 실상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그들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모습이다.”

■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북한취재팀장은…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북한취재팀장은 관련 분야에서 가장 인정받는 취재기자 중 한 명이다. 1993년 중국 단둥을 시작으로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 북·중 국경을 취재하며 북한 취재와 연을 맺었다. 현재 아시아프레스의 일본 오사카 사무소를 이끌고 있다.

한국어에 매우 능통하다. 취재 초반엔 북한을 세 번 취재했지만 “북한 내부는 외부인 입장에서 절대 제대로 취재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북한 주민들의 도움을 받게 됐다. 일반 주민부터 간부들까지 다양한 계층의 북한 사람들 10여명이 아시아프레스의 기자다.

주요 취재로는 ‘북한 난민의 증언(北朝鮮難民の?言)’, ‘북한에서 온 소녀(北から?た少女)’, (NHK?ETV特集), ‘북한인 저널리스트, 리준 특집(北朝鮮ジャ?ナリスト、リ?ジュン特集)’ 등이 있다. ‘북한난민 문제에 빛을 전하는 일련의 보도(北朝鮮難民問題に光を?てる一連の報道)’는 일본 최고 방송상 ‘갤럭시상’ 보도활동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1962년 일본 오사카 출생
△도시샤대 문학부
△연세대 2년 6개월 유학
△ 1993년 북·중국경 1400km 답파로 北 취재 시작
△1998년 세계 최초로 북한의 기아 실상과 ‘꽃제비’ 영상 공개
△2008년 북한 내부 기자들 출간 ‘림진강’ 창간
△아시아프레스 북한취재팀장(現)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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